캐딜락 인사이트

캐딜락은 지난 116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혁신적인 기술과 차별화된 디자인을 통해 자동차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 왔습니다. 열정과 대담함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도전과 전진을 이뤄낸 캐딜락이 ‘대담한 도전(Dare Greatly)’라는 또 하나의 여정을 시작하며 브랜드의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습니다. 더 역동적으로 거듭난 캐딜락은 한층 풍성해진 포트폴리오와 향상된 퍼포먼스, 업계를 선도하는 기술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아메리칸 럭셔리의 역사를 써 내려갈 것입니다.

1900s

PIONEERING INTERCHANGEABLE PARTS.

1902년, 캐딜락은 당시 최고의 자동차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인 헨리 릴랜드(Henry Leland)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캐딜락이라는 브랜드명은 디트로이트를 탄생시킨 앙트완 모스 카디야(Antoine de la Mothe Cadillac)경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실제로 캐딜락의 ‘크레스트(Crest)’ 로고는 카디야 가문의 문장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설립 후 불과 6년 만에 캐딜락은 완전히 호환이 가능한 정밀 부품들을 소개하며 자동차 대량 생산을 위한 기초를 마련합니다. 그 결과, 캐딜락은 영국 황실 자동차 클럽(Royal Automobile Club of England)이 수여하는 ‘듀어 트로피(Eewar Trophy)’를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캐딜락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세계의 표준(Standard of the World)’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게 되었습니다.

1910s

INTRODUCING THE ELECTRIC SELF-STARTER.

캐딜락은 ‘모델 써티(Model Thirty)’를 통해 ‘시동을 거는 크랭크가 없는 차,’ 전기로 구동하는 시동 장치, 점화 장치와 전조등을 최초로 장착한 양산차를 소개했습니다. 이러한 혁신적인 기술들로 여성들에게 운전의 기회가 열렸을 뿐만 아니라 캐딜락은 다시 한 번 드워 트로피를 수상합니다. 이 영광스러운 상을 두 번이나 가져간 최초의 자동차 회사가 되었습니다. 1915년에는, 캐딜락의 시그니처가된 V형 수냉식 8기통 엔진을 최초로 장착한 양산차를 출시했습니다.

1920s

ELEVATING STYLE AND CUSTOMIZATION.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 예술과 디자인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1925년, 캐딜락은 락카 페인트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1926년에는 경쟁자들이 여전히 어둡고 칙칙한 색상의 자동차를 공급할 때, 500가지 이상의 색상 조합을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그 해 할리 얼(Harley Earl)을 영입하였고 할리 얼은 1927년형 ‘라살(LaSalle)’ 컨버터블 쿠페를 디자인하였습니다. 라살은 엔지니어가 아닌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미국 최초의 차로, 물 흐르는 듯한 우아한 라인 그리고 크롬 도금 장식으로 화려함을 추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20년대가 끝날 갈 무렵 캐딜락을 아름다움과 고급스러움의 대명사로 만들어 준 디자인 철학이 탄생하였습니다.

1930s

MAKING HISTORY WITH THE 16.

대공황이 한창일 때에도 흔들림 없이 굳건했던 캐딜락은 세계 최초로 V형 16기통 엔진을 승용차에 장착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차량은 캐딜락 역사를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가 되었으며 다시 한번 기준을 높였습니다. 그 당시 한 언론에서는 캐딜락의 V16 엔진을 두고 “너무나 부드럽고 조용해 실제로는 연료를 폭발 연소시켜 추진력을 얻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라고 평했습니다. 12기통 모델이 뒤를 이어 개발되어 캐딜락의 시그니처인 V8 엔진과 V16 엔진에 추가되어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혔습니다. 30년대 중반, 캐딜락은 약 68가지의 스타일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1937년 캐딜락이 개발한 V8 엔진은 인디애나폴리스 모터 스피드웨이(Indianapolis Motor Speedway)에서 이제까지의 모든 스톡카 기록을 경신하며 그 진가를 증명했습니다.

1940s

INTRODUCING THE CADILLAC SIGNATURE TAIL FINS.

진주만 공습 직후, 캐딜락은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군수물자 생산에 집중했습니다. V8 엔진과 변속기 그리고 동력장치는 ‘M5’ 경전차와 ‘M8 곡사 박격포 전차(M8 Howitzer Motor Carriages)’에 사용되어, ‘평화 시에는 멋진, 전쟁에서는 뛰어난’ 이라는 캐딜락의 슬로건에 부응했습니다. 전후 캐딜락의 디자이너 할리 얼은 테일 핀(Tail Fin) 디자인을 선보이며, 미국 자동차의 옆모습을 다시 한 번 변화시켰습니다. 록히드 사의 ‘P-38 라이트닝(P-38 Lighting)’ 전투기를 본떠 만든 테일 핀은 20년 가까이 미국 자동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습니다. 1940년 캐딜락은 지금은 자동차 업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올해의 차(Car of the Year)’ 상을 최초로 수상하며, 자동차 산업에 대한 캐딜락의 영향력을 재차 확인했습니다.

1950s

MAKING POWER STEERING THE NEW STANDARD.

캐딜락은 1950년 전후 호황기를 만끽했고, 1951년 연간 생산량은 전쟁 전의 2배에 가까운 10만대를 넘어섰습니다. 게다가, V8 엔진을 탑재한 캐딜락 차량이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레이스 중 하나인 르망 24시간 레이스(24 Hours of Le Mans)에서 3위, 10위 그리고 11위를 차지했습니다. 50년대 자동차 산업의 트렌드를 이끌며, 캐딜락은 자동차 업체 중 최초로 전체 제품 라인업에서 파워 스티어링을 장착하였으며, 뒤이어 헤드램프를 자동으로 밝혀주는 ‘오토트로닉 아이(Autotronic Eye)’를 포함, 다양한 혁신적인 안전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엘도라도 컨버터블(Eldorado Convertible)’를 통해, 테일 핀 디자인은 정점에 이르렀고, 50년대가 끝나갈 무렵에는 50년대를 대표하는 디자인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1960s

UNVEILING INNOVATIONS IN PERFORMANCE AND COMFORT.

캐딜락은 60년대에도 기술과 스타일에서의 진보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자체 조절 브레이크가 60년대 초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캐딜락 엠블럼 중 가장 잘 알려진 월계수 잎이 둘린 방패형 크레스트(Wreathed Crest)’ 로고가 1963년형 엘도라도에 재등장했습니다. 1963년 캐딜락은 앞좌석 안전벨트를 소개했고, 다음 해에는 법으로 안전벨트 장착이 의무화되었습니다. 1964년에는 또한 자동으로 조절되는 헤드램프가 등장했고, 업계 최초로 온도 조절이 가능한 난방, 환기 및 냉방 시스템인 ‘컴포트 컨트롤(Comfort Contorl)’을 적용해, 럭셔리의 개념을 재정립했습니다. 그 후 몇 년간 가변 파워 스티어링, 시트 히터, 스테레오 라디오가 속속 소개되었습니다. 1965년 테일 핀 디자인이 단종되며, 미국의 한 시대가 끝을 맞이했습니다.

1970s

DEBUTING ELECTRONICALLY FUEL-INJECTED ENGINES.

캐딜락은 400마력의 8.2리터 엔진을 장착한 엘도라도를 소개하며 70년대를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된 차축은 그 당시 어떠한 승용차보다도 가장 뛰어난 토크 성능을 발휘하였습니다. 1974년 승객의 안전을 위해 공기쿠션 장치, 즉 에어백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해 촉매 변환 장치를 차량에 장착하였습니다. 1975년에는 미국에서 생산된 자동차 중 최초로 전자제어 연료 분사 엔진을 채택했습니다. 그리고 1978년 ‘스빌(Seville)’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하는 디지털 디스플레이는 장착해, 컴퓨터화된 자동차 시대의 도래를 알렸습니다.

1980s

BRINGING COMPUTER TECHNOLOGY TO VEHICLES.

캐딜락은 드라마틱한 ‘스빌 엘레강트(Seville Elegante)’를 발표하며 80년대의 역동성에 정면으로 대응했습니다. 30년대와 40년대 클래식카 디자인을 모던하게 재해석하여, 날렵한 스포츠카 바디, 그리고 “버슬-백(Bustle-Back) 스타일을 업계 전반에 유행시켜, 업계 전체가 이 스타일을 모방하기도 했습니다. 혁신적인 면에서, 캐딜락은 자동차 회사 중 최초로 점화장치, 연료 분사 장치, 차량 진단장치에 통합형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했습니다. 또한, 고객 서비스 정책을 정립하고 새로 구입한 차량의 배송 절차를 표준화해, 차량 검사 및 시승, 자동차에 대한 설명에 대한 매뉴얼 등을 제공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해 미국 시장조사업체 J.D. Power는 캐딜락을 판매 서비스 분야 1위로 평가했습니다.

1990s

ENHANCING ELECTRONIC CAPABILITIES.

90년대를 시작하며, 캐딜락은 미국 최초로 전륜 구동 자동차에서 전자제어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을 도입하고 1990년형 ‘캐딜락 알란테(Cadillac Allante)’에서 기본 사양으로 제공 장착했습니다. 같은 해, ‘말콤 볼드리지 국가 품질상(Malcolm Baldrige National Quality Award)’를 수상했습니다. 1992년, 32 밸브 ‘노스스타(Northstar)’ V8 엔진을 통해 냉각수 없이 50마일을 달리 수 있는 ‘림프 홈(Limp Home)’ 기능과 거의 완벽에 가까운 연료 배분을 보여주는 독특한 인덕션 시스템을 포함 16개의 특허를 소개했습니다. 1992년형 캐딜락 ‘스빌 투어링 세단(Seville Touring Sedan)’은 완전히 전자식으로 제어되는 파워트레인, 트랙션 컨트롤, ABS 브레이크, 속도 감응형 서스펜션과 같은 기능으로 ‘올해의 캐딜락차(Cadillac of the Year)’에 선정되었습니다. 전 세계 40개국 이상에 수출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된 캐딜락 스빌 투어링 세단은 캐딜락의 새로운 글로벌 전략을 담고 있었습니다. 1999년 마침내 캐딜락은 상징적인 에스컬레이드(Escalades)를 통해 럭셔리 SUV의 기준을 한 차원 높였습니다.

2000s

BREAKING NEW GROUND.

100주년을 맞아 캐딜락은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한계를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F-22 스텔스 전투기에서 영감을 얻어, 다양한 수상 경력에 빛나는 ‘씨엔 콘셉트(Cien Concept)’를 발표하며 2000년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캐딜락은 세계 최초로 대형 럭셔리 하이브리드 SUV인 에스컬레이드 하이브리드(Escalade Hybrid)를 공개했습니다. 같은 해, 2세대 CTS 세단이 누구나 탐을 내는 ‘2000년 올해의 차(2008 Car of the Year)’를 수상해, 캐딜락은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습니다. 독일의 전설적인 ‘뉘르브르크링(Nurburgring)’에서 7분 59초 32의 랩타임을 기록한 세계에서 가장 빠른 8기통 양산차인 2009년형 CTS-V로 더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또한, 캐딜락은 혁신적인 ‘볼텍(Voltec)’ 전기구동기술이 적용된 ‘캐딜락의 전기차’로 불리는 ‘컨버지 콘셉트(Converj Concept)’ 럭셔리 쿠페를 공개했습니다.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 이 10년에 정점을 찍은 것은 전통적으로 미국 대통령의 자동차인 캐딜락 리무진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새로운 장을 연 것입니다.